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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테크

사진도 필름처럼 – 기술이 아닌 감성의 기록으로

감정이 담긴 사진은 느리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1. 필름 사진의 감성: 기술을 넘은 기록의 깊이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손쉽게 찍고, 쉽게 버려지는 일상이 되었다. 스마트폰 한 대로 수천 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고, 다양한 필터와 보정 앱으로 몇 초 만에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이 과연 우리의 기억에,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을까? 반대로 필름 카메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선명한 기억과 감정을 동반한 채 오래도록 간직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필름 사진은 느림이라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 우리는 앵글을 고민하고, 빛의 양을 가늠하고, 노출과 초점에 신경을 쓴다. 한 장 한 장이 귀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지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몰입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과 감정, 생각이 녹아든 기록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필름 사진 속에서 풍경보다 더 깊은 '감정의 온도'를 읽게 되는 것이다.

 

2. 디지털 사진의 홍수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AI 보정, 심도 조절, 자동 밝기 최적화 등은 분명 기술의 발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기술 속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와 ‘기록하는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일상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나면, 오히려 어떤 장면이 가장 소중했는지 모호해지고, 수많은 사진 중 어느 것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기록은 늘어나지만, 감동은 줄어드는 아이러니다.

이런 디지털 사진의 편리함이 때론 사진 자체를 소비재처럼 만들어버린다. SNS 업로드를 위한 촬영, 순간의 과시를 위한 연출된 장면들. 그 안엔 감정보다 형식이, 진심보다 효과가 우선시되기 쉽다. 결국 우리는 사진을 통해 삶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위해 삶을 연출하게 된다. 슬로우 테크의 시선으로 보면, 이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감각을 약화시키는 현상이다.

 

3. 사진을 ‘기억의 도구’가 아닌 ‘느낌의 언어’로 바꾸는 법

슬로우 테크의 실천 중 하나는 ‘어떤 사진을 남길 것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다. 필름 사진이 단지 빈티지한 감성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진심으로 담을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술보다 감정을 중심에 두는 슬로우 테크 철학은 사진을 다시 ‘느낌의 언어’로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한 장의 필름 사진을 찍기 위해 천천히 걷고, 대상을 바라보고,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한 촬영을 넘어선다. 이 과정은 의식적인 삶의 속도 조절이자,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명상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셔터를 누르며, 우리는 그저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감정으로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록하게 된다. 사진이 다시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라, 감정의 창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4. 기술을 덜어낸 사진, 더 진심이 담기는 기록의 방식

우리는 반드시 필름 카메라를 써야만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기술보다 '기록하려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더라도, 그 속도와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로우 테크적인 사진 기록이 가능하다. 하루에 단 한 장만 찍는 ‘데일리 원샷’ 프로젝트, 감정을 글로 남긴 뒤 사진과 함께 인쇄하는 아날로그 사진 노트 등은 그 좋은 예다.

기술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히는 것. 그리고 그 시선으로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습관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건,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감정과 시선의 진정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남긴 사진은 아무리 오래 시간이 흘러도, 찍은 그날의 나를 정확히 불러낸다. 슬로우 테크는 바로 그런 사진을, 그리고 그런 삶을 지향한다.